20151010 설교

 

지금 이 순간, 햇갈릴 때

 

(45: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45: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45: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45: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45: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45: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45: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45: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45: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45: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45: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최근에 몇몇 계기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거기서 커다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살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망령이 무엇이냐, 누구나 과거를 돌아볼 때에 좋은 기회가 있던 순간도 있었고, 잘 할수 있었는데, 본인의 능력이 됨에도, 어떤 부조리로인한 좌절이나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제에 악영향을 끼칠 때, 과거로 인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때 저는 그것을 과거의 망령이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10년을 되돌아보면, 저 자신에게 중요한 시기들을 수가 틀렸단 이유로, 예를 들어 실재로는 그럴수록 그때라도 다시 할수 있는걸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텐데, 사춘기떄도, “좋은 기회를 놓쳤으니까, 아예 공부고 뭐고 안해버릴 거야, 반항할거야, 그때 못했으니까...지금 해서 무슨의미야 그때처럼 좋은 기회가 있는것도 잘하는 것도 아닌데..” 같은 식으로 수가 틀려서 엇나가고, 또는 노력하기 싫어서, 현재에 안주하고 싶어서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는 했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그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그때가 늦은게 아니였는데, 틀어진게 아니였는데, 그때 왜 좀더 현명한 길을 택하지 못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럴 때 왜 나는 좀더 현명한 선택을, 노력을 하지 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최근을 포함한 어떤 과거의 상처, 또는 역경, 시련의 경험에 대해 어떤 자세로 그것을 대해야 하는가, 또 그에따라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샙이 애굽으로 끌려간 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하는 과정을 거쳐 끝내는 애굽의 총관에 오른 후, 심한 기근으로 이를 대비하지 못한 요셉의 형제들과 아버지가 상봉하는 과정을 담고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것은 요샙이 결국은 총관이 되어 끝내는 자신을 버렸던 형제들과 아버지를 구원했다는 사실보다, 이 과정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먼저 20, 공동 번역본을 보면, “가지고 있던 세간 같은 것은 아까워하지 말아라, 이집트 전국에서도 가장 좋은 땅이 그대들이 것이 될 것이다.” 라고 나와있는 구절입니다. 과연 이것이 쉬운 일일까요? 자신들이 여지것 살아온 모든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버린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지것 잘 살아온 기반을 버려두고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과연 쉬운 결정일까요?

또한 26절에서는 야곱이 요셉의 살아있음과 그가 총리가 된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냥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대뜸 대국의 총관이 되어있다니, 분명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참 어리둥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 모든 것을 이기고 28절에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라고 나와있습니다.

어쩌면 어려움속에 있는 구명줄인데 쉬운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의 다음 장을 살펴보면, 야곱이 두려워하니,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것이 자신의 계획임을 알려주는 구절을 살펴보니 이는 당시 야곱에게 쉽지 않은 결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야곱이 여지것 살아온 것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떠나지 못했더라면, 요셉이 살아서 총리가 된 사실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제와서 그게 무슨소용이냐, 그 아이에게 짐만 되지 말자꾸나 그냥 우리는 없던 사람처럼 살자... 하고 눌러 앉아버렸다면?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들이 버린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 요셉이 저난 말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아니면 이전의 본문속에 찾아볼수 있는 요셉의 고난속에 요셉이 아 진짜 왜이래... 나 운도 더럽게 없네.. 하고 낙심해버렸다면?, 또는 요셉이 과거의 일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가족을 벌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분명 하나님의 뜻과도 다를 것이고, 야곱, 이스라엘은 기근으로 말라죽고 출애굽은커녕 입애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중간에 낙심해서는 삐뚤어 졌다면, 야곱이 요셉을 안만났더라면, 살던곳을 버리고 떠나지 못했더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였을까요?

결론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좀더 사랑하는 방향이며, 낙심하고 포기하고 삐뚤어지기보다는 과거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경험을 버리고 현제 자신이 할 수 있는 현명하고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요셉은 애굽의 총관이 될 수 있었고, 형제들 또한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며 아버지 또한 기쁜 마음으로 요셉을 보러 출발하고, 이로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고는 합니다. 더 좋은 무엇인가를 위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하는 순간도 있고, 노력하는 것이나, 새로운 것이 두려워서, 또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내 생각을 버리는 것이 힘든 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도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정말 원하고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지, 포기하고 가만히 있거나, 당장 조금 편하다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버려두고 현실에 안주한 삶을 살거나, 과거의 상처에 매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또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일까요?

그런 것은 하나님도, 저도 원치 않는 단순히 안주하거나, 또는 제살 깎아먹는 치기에 불과한, 현명하지도 못하고, 사랑도 없는 그저 어리광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제에 충실하고, 과거에 매이지 않으며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려가며 더 나은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자세라는 것을 오늘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낙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에, 심지어 가지고 있던 관념이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을 때 그것을 버리는 일 마저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으며, 요셉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과거에서 벗어나 현제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함을 믿는 것, 또한 우리에게 좀더 나은 것을 주고자 하심을 믿는 것, 이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과거를 벗어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어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이끌게 합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가 틀린 것이 두려워서, 내가 버려야하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노력하는 것이 고통스러울까봐 두려워서. 후회가 두려워서,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이 두려움을 의미없게 만들고 따라서 사람으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두려워할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속에서 오는 역경이 과연 인간이 견뎌내지 못하는 역경일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역경을 주고자 하신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적이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떤 어려움이기 보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과 맞는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그것은 결론적으로 그것이 덕을 세우느냐 아니나로 구분지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이오갑 교수님 수업을 들으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어떤 서로 상반되는 생각, 예를들어 술에 취해 방탕해지는것과 좀 힘들지만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에 자신이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자신을 망가트리는 경우와 정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경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칼뱅의 서적중에 있지 않았는가 합니다. 진짜 지향성에 대해.] 이 얘기가 생각이 나서 예전에 쓰면서 살펴봤던 몇몇 칼뱅에 관련된 문헌을 살펴보기도 했는데요, 칼뱅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문제, 일명 아디아포라 라고 부르는 문제에서는 결국 덕을 쌓는 방향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또한 성경도 전체적인 맥락은 결국 주변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물 28절을 공동번역에서 살펴보면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내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니, 죽기 전에 가서 그 애를 봐야지." 하고 이스라엘은 중얼거렸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움직인 이유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지금 가지고 있는게 아까워서, 또는 가서의 일이 걱정되서 가만히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뿐이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구제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것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애굽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결론지어 어떤 변화가 생길때나, 과거가 발목을 잡을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는지를 성찰해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두려움보다 담대함으로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매여있지 말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고 지양하는 자세입니다.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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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고 완성하는 일

 

창세기 1:26~27;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공동번역

(1:26)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쉬운성경

(1:2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과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갖 가축과 들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

(1:27)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새번역

(1: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 '아담'

(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 , '아담'

 

근래 들어 저를 참 자극한 노래가 있었는데요, 바로 김연아와 아이유가 함께한 얼음꽃이라는 노래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며 듣게 되었던 것이였는데, 좋은 가사와 당시 아이유의 무거운 목소리가 더해져 용기가 나게 해 주는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내용이 좋아서 가사 일부를 적어왔는데요,

넘어설 무엇도 뒤쳐질 걱정도 어느새 멀어진 그곳에서 빛날 필요없이 아름다운 나를 꿈꾸고, 눈길이 없고 박수 갈채도 없는 나만이 나를 바라보는 곳에 홀로 서 있을떄 거기서 웃을 수 있는, 날 사랑해 줄수 있는 내 모습을 믿습니다..

 

다른것도 다 좋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가장 제가 인상 깊었으며, 감동을 받았던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내 모습, 이라는 가사였습니다.

일전에 누군가가 너는 왜 너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어렸기에 잘 몰랐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참 무엇인가를 찾고 있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과, 누군가를 돕거나 사랑할 때에도 그때와 지금이 느낌이 참 다르다는 것, 다른 이유는 내가 누구인가를 조금이나마 찾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의 어원은 배울학 물을 문 자를 써서 배우고 묻는 법이라고 합니다. 근래에 들어 어떤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모든 학문의 출발이 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나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른 어떤 것들을 제외시키다 보면 나는 무엇이라 정의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며 평생동안 발견해야할 인생에 주어진 숙제일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니 스스로 자신을 발견할수록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라는 경험을 하게 된 것에 있었습니다. 어느덧 알량한 자존심보다는 스스로 혼자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을수 있는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서리치도록 느꼈으며, 정말로 나를 변화시키고 내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나 자신에게서, 자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고만을 하다보니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 질문은 성경에서는 우리를 무엇인가라고 정의하고 있는지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 볼 때에 오늘의 본문에서 성경은 가장 원천적이고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우리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창조자로써의 기질을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 또 본문에도 닮긴 했으나 다스리게 하자라고 나와 있는걸로 보아 creator가 아닌 operator로 창조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또한, 역학적인 원리나, 어떤 증명된 법칙을 이용하는 것은 발명이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operation 즉 운용의 목적은 어떤 행위나 생산을 효율적으로 한다거나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창조가 없는 운용은 발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을 관찰해보면, 굳이 가만있어도 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뭐라도 하려고 하고 개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창조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니, 사람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바로 관계 아닌가 합니다. 같은 시간과 생각, 혹은 글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이 되었든 서로 시간과 매체를 통해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그 공유로써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큰 창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라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미로처럼, 거미줄처럼 얽혀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에선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어딘가에서는 충돌이 발생하며, 또 수단과 목적이 바뀌면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또한 이 과정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지요, 좋든 싫든 간에 이 관계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만들게 되고, 또 그렇다고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아닌 만든 객체들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자, 가장 쉽게 만들어지면서도 또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자, 또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바로 이 관계가 우리를 만들고 또한 이 관계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자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통해 나를 본다거나, 이 관계를 통해 배운 것으로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 또한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수도 있게 되고, 나를 위해, 그리고 관계을 위해, 성찰하고, 노력하며, 개선하고, 행복을 추구하게 되지요.

이렇게 볼 때에 어쩌면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듬어 나가는 것. ,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야말로 발견보다 마치 대리석 덩어리로 조각을 하듯 다듬어 나가는 창조에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풀어야할 지상과제이자, 또한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과, 은혜이며 여기에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성경이 아닌가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어쩌면 창조라는 것은 하나님 당신 또한도 당신이 당신 되기 위한 창조가 아닌지 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길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저는 성경이 이런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다듬어나가는 것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 당신이 당신됨을 보이고, 어떤 이상향으로써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한 존재로써 관계하기 위해 완성하셨고, 나타나신 분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나를 만들고 다듬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또한 당신이 바라는 우리인지를, 우리의 삶을 위해, 흔히 말하는 잘못된 방향으로의 삽질을 좀 안 해도 되도록 방향을 잡아 주신 것, 완성을 위해 존재하는 책, 그것이 성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볼 때에 성서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정말 알맞은 말인 것 같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좀더 완전한 자기 자신을 찾고, 다듬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13~ 16을 보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자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그냥 불의를 따르지 않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되는 일일까요? 아마, 이 말이 단순히 착하게 의롭게 살라는 의미라면 기독교가 불교와 별 차이가 없을 듯 합니다.

여기에도 성경은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8:12를 보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빛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서는 예수와의 연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마음에 모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그 소금의 짠맛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우리가 빛이 되게하는 광명체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예수님이 없이는 우리가 빛과 짠 맛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예수님과의 관계속에 있을 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또한 우리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찾고, 바라보며 다듬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이 모든 것은 예수를 마음에 모실 때 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고자 성경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먹으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또한 자신과 이어져 있을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면 그는 완벽한 멘토로써 우리를 이끌고, 우리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면서 또한 그분이 빛으로써 우리를 비추게 되어 우리가 우리자신을 바라보고 또한 그분이 제시한 방향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듬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앞장서기도 하는데

예수님을 mentor, 친구, 가족으로 여기고 믿고 그를 따르는 것, 그를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회심의 시작이며, 예수님과의 관게라고 할 수 있는 기도의 출발점 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지금의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그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또 그가 원하는 길은 쉽지 않은 좁은 길인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어쩌면 믿음으로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은 말이 좋아 값없는 은혜지 그 은혜를 받기 위한 용기는 꽤나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고, 이 길이 맞는 길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항상 좀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일 아닌가 합니다.

 

 

 

 

 

정리하자면

1)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창조되었고, 또한 지금도 관계라는 것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며 스스로 완성되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2) 나와 다른 사람의 완성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3)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이를 위해 우리와 관계하고자 예수님이 나타났다.

4)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방법은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것, 관계하는 것이다.

가 결론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마음속에 예수님이 항상 계신지, 항상 그와 관계하고 있는지, 그에게 말하고,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성찰해보고, 아니라면 진지하게 나를 위해서, 예수님과의 관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과 관계하며 정도를 걷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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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30. 11:27 작성한 글입니다.(블로그 이전중)
대학생활이 끝나고, 본가로 들어와보니 아무래도 4년간 거의 잠만주말에 와서 자다시피해서 폐허와 다름없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2년, 공익생활과 함께 공부도 조금씩 병행을 해야 하는 내 방이기에 인테리어를 시작하기로 한다.
벽 칠하기 - 오래된 벽을 도배를 할까해서 보니 아무래도 페인트가 좀더 내 감성에 맞는 거 같아 벽을 칠하기로 하고, 흰색으로 칠했다. 사진이 없어서 생략 ㅠㅠ
틈이 벌어진 곳이나 홈이 있는 곳마다 핸디코트를 칠해주고 2~3번 덧칠해주면 끝이다.

등의 경우 레일등으로 교채했다.

가격과 상세설명은 이후 추가하도록 하겠다.
바닥재 갈기.

아무래도 장판이 오래되서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말도 아니였다.

장판을 갈려고 고민한게
1. pp장판
2. 데코타일
3. 폴리싱/포세린 타일


1의 경우 대중적이고 값이 싸지만 잘 찢어지고 분위기를 살리기 힘들다는 장단점이 있고

2의 경우 여러가지무늬가 있고 실제 타일과 같은 느낌도 낼 수 있지만 역시 장판느낌이 강하다는 점이 있다.

3의 경우 겨울에 난방에 따뜻,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깨질 수 있고 가격이 비싸다




사실 고민과정은 상당히 길었는데, 때마침 타일공장에서 1000ea이하는 소량이라 품절된 상품을 싸게 판매한다고 해서 남양주까지 가서 실어왔다.
내방은 대략 3평 남짓, 1.44m^2가 1회배, 1box니까 필요한건 대략 8박스
근데 가보니 10박스만 남았다고 나머지도 그냥 가져가란다... 보수용도 필요하니 일단 11만원에 업어왔다.

(일반 쇼핑몰에서 사려면 좀 비쌉니다.)


일단 준비문은 4가지.

1. 타일
2. 온돌용 드라이 픽스. (일반 압착으로 하면 난방시 수축 팽창으로 떨어집니다.)
3. 줄눈 시맨트
4. 톱니 흙손

여기서 4번 준비물은 꽤나 중요하다.

보통 각종 블로그 등을 보면 바닥에 시멘트나 드라이픽스를 시공시에 위와 같은 헤라를 이용하라고 안내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의 경우 글쓴이가 시공했다가 타일이 들떠서 뜯어냈다.
일단 상당히 얇게 칠해지고, 플라스틱이라 닳아서 나중에는 사실상 타일 시공할 만큼 양의 드라이픽스가 바닥에 남지를 않는다.


반드시 이런 흙손을 사용해야 한다, 동네 철물점에서 5천원 정도면 구매할수 있으니 반드시 구입하도록 하자.




원래 카키색의 마블느낌을 생각했으나, 그냥 노출느낌이다.
바닥을 까내는 과정은 사진을 생략했으나, 오래된 집의 경우 합지장판위에 장판을 덧씌운 경우가 많아서 긁어내는 과정이 조금은 성가시다.

철로 된 솔을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닥을 잘 긁어낸 뒤

바닥에 드라이픽스를 잘 개서 고루 발라준 뒤 흙손으로 무늬를 내주고 타일을 올리면 된다.
이때 타일을 고무망치로 두드리면서 드라이픽스와 잘 압착이 되도록 한다.


그럼 대충 이와 같은 상황이 나온다. 처음이라 상당히 시행착오가 많았기에 사진은 못찍었다.
여기서 초행자들은 인터넷에 타일 레벨링을 검색해보면 타일 높이를 맞추는 도구가 나오니 사용하기를 강력추천한다. 정말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어느정도 양생이 된 뒤에는 줄눈 시멘트를 물에 잘 개서 (치약정도) 줄눈을 채워준다. 고무해라를 이용하는것이 편하고, 손으로 넣어줘도 된다.


그리고 나서 걸래를 물기를 짜서 닦아주면 위와 같은 모습이 된다.


아무래도 틈틈히 시간날때 하다보니 가구를 그대로 두고 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타일은 원하던것과 조금 색이 다르지만 그래도 벽과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 다행이다.


문틀과 닿는 부분은 그라인더로 치수를 재서 잘라야 한다.

벽과 만나는 부분은 줄눈 뒤 페인트로 마감을 하면 깔끔하게 마감이 된다.

타일 시공법은 각종 블로그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생략하지만 팁을 주자면

타일은 가운대부터 깔아나가면서 사이드를 잘라서 넣는것이 정석이며, 자르는건 근처 철물점만 가도 잘라준다. (그라인더가 있는경우 건식날이 12000원이므로 날을 사서 자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분진이 엄청나므로 비추.. 일례로 1주일내내 청소했다...)

이제 다시 대충 청소와 가구를 다시 옮기고 나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보니 수납공간이 상당히 부족하다.

책도 상당수 있고, 옷, 악기도 있다보니 아무래도 좁고 한계가 느껴지는 모양

집에 들어오니 이불깔고 자는게 생각보다 허리가 아파서 침대도 놓을겸, 겸사겸사 아래에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침대를 짜맞추기로 했다.


원래 이케아나 몇몇 가구업체에서 철제벙커를 보긴 했는데, 상당히 부실한 골조에다가 가격이 덤탱이인 느낌이기도 하고,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도 않고, 슈퍼싱글도 없고... 이래저래 짜맞추는게 낫겠다 싶어서 짜맞추기로 했다.

일단 스케치업으로 도면을 그린다.



사실 좀 방이 협소해서 고민이 되기에, 싱글, 슈퍼싱글, 더블을 놓고 고민을 했다.

다만 본업이 있으므로 큰 책상을 포기할 수는 없고, 역시 슈퍼싱글이 적절하다고 판단.



대충 방의 가구배치를 해보니 이런 모양이 나온다. 이후 좀 수정을 할 계획이긴 하지만 큼직한 것만 대충 해본 결과는 이러함.


자세한 도면을 3d로 제작, 사실 사다리로 올라가면 될것을 강아지를 고려해서 계단을 넣었다.

덕분에 제작비가 30%가량 상승했지만.. 우리집 개는 높은곳을 좋아하기도 하고
반려동물이니까 최대한 배려하기로 한다.

이제 재료를 주문할 차례

큼직큼직한 채결에는 P-클립이라는 것을 이용하기로 한다.
용접없이 각파이프를 붙여주는건데, 높이조절도 가능하고, 허용하중도 거의 톤급이라....
튼튼하다.

인터넷에 p-클립을 검색해보면 거의 30% 가량비싸고 피스를 박아야하는 짭퉁 p클립도 나오는데
해당특허를 가진 월드개발에 들어가보면 30x30 12개 1박스/ 50x50 8개 1박스 기준이 45000원이다.
대리점을 검색해서 근처 대리점을 가거나 직접 구매하기를 추천한다.

여튼 근처 철강점을가서 각파이프를 절단구매한다.

참고로 각파이프의 경우 6m 1본이 기준이며 인터냇에서 사려고 하는경우 대략 3배가량 비싸다.
아무래도 아는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호구를 상대로 판매하는듯한데

50x50 파이프 1본 기준으로 2.0t의 경우 13000원선, 1.4t의 경우 11000원 선이다.


위와같이 견적이 나왔고,

절단비까지 대략 15만원정도가 나왔다.

여기서 한가지 추천하자면, 절단해줄때 그냥 고속절단기를 쓰는 곳이 있고, 레일 위에 놓고 파이프절단기로 잘라주는 곳이 있는데, 좀 큰곳을 가서 파이프전용 절단기를 쓰는곳을 가자. 오히려 절단비도 싸게먹히고, 절단이 정확하고, 직각으로 정확히 잘라준다. 또한 절단면도 지저분하지가 않아서 손이 많이 가지를 않는다.

나같은 경우 그냥 고속절단기로 잘라주는곳을 가는 바람에 절단비도 많이 나오고, 5mm까지 오차가생겨서 제작과정중 상당히 애를 먹었다 (가서 따질걸..)

여튼 재료를 날라온다.


크...크고 아름답다.. 무겁기도 무진장 무겁다.. 내가 거실을 다 차지했네..

여튼 가공과정중 철가루가 많이 떨어지니 신문지를 깔아야 한다.


큼직큼직한 골조들은 p클립으로 이렇게 체결해준뒤


개당 500원가량 하는 하스너를 구입해서..



요렇게 5미리 드릴로 구멍을 뚫고



요렇게 6미리 핸드탭으로 나사산을 내준 뒤

위와같이 체결해준다.

분해,조립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고려를 한 결과 볼트를 이용하게 되었다.


대략적인 골조가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제 페인트를 주문한다. 페인트는 방에 어울리도록 검정 계열을 쓰기로 한다.

이후 다시 추가 예정.

20170207 추가.

(한동안 블로그를 못하면서 밀렸었는데 간략하게 추가)



골조를 완성 뒤 방에 배치 후 파티클 보드를 잘라서 수납 공간 겸 계단을 만들어 준다




상단의 경우 대패된 스프러스를 구매하여 얹어주었다. 남는 방부목을 쓰려다 실내이므로 가공하기도 편하고 마감도 대충 오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스프러스로 구매..!

자제비는 대충 4만원정도 쓴듯.




경화되는 오일이면 뭐든 상관 없다. 린씨드 오일, 텅 오일, 포도씨유 등등
나의 경우 귀찮아서 포도씨유를 3번 발라줬다.


그리고 책장을 사진상에는 하나지만 같은걸 옆에 붙여서 배치했는데, 이때 상단에는 침대에서 보기 좋은 책을 넣었다.
침대 옆으로 들어가있으므로 나중에 책을 전체적으로 보기가 사나울 것을 대비하여 레일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바닥이 타일인 관계로 그냥 캐스터 바퀴를 달아줬다, 바퀴하나당 하중이 30kg을 감당할수 있다기에 4개씩 달아줬다. 문을 닫고 책장을 빼면 두 개가 전부 침대밖으로 빠진다.

침대밑에는 이동식 행거 2개와 옷과 악세사리를 정리할 이동식 선반을 놓으려 했으나
심플한 검정 행거는 구매가 가능했지만 교구장느낌의 선반의 경우 원하는 타입과 색상이 없어 고민하다 결국 그냥 4단 트롤리 메쉬 수납함을 사다 마무리했다.


이렇게 나의 셀프 방 인테리어는 끝이 났다. 끝은 몽이로 장식


침대위 몽이.




계단위 몽이




정리중이니 나가고싶은 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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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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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4. 15:46 작성한 글입니다.
방 디자인을 새로 하면서 가구배치를 고민중, 벙커침대를 하나 사서 밑에 옷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케아등지를 살펴본 결과....
부실한골조+싱글or더블만 있음, 
내가 원하는 것은 슈퍼싱글인데,......또 별로 튼튼해뵈지도 않음.

그럼 만들지뭐라는 생각에 방법을 생각하다가.. 문득 새로 인테리어중인 상가를 지나치면서, 
용접하는 모습을 보고, 그럼 각관을 쓰면 되자나?? 라는 생각이 떠오름.
마침, 이제 용접없이 연결할 수 있는 p클립도 나왔고..

아래 사진이 바로 p클립이며, 30, 50, 75mm가 시중에 나와있다.



 


일단 나이가있어서 머릿속에 완전하게 모델링이 되지를 않는다. 따라서 그려야한다.



 

계산해보니 각관이 대략 27M정도 필요하다.

음./.. 요즘싯가로 각관이 약 50000원정도 들어갈듯하고, 클립값도 비슷하게 들어갈 듯 하다.

아직은 계획만....☆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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