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고 완성하는 일

 

창세기 1:26~27;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공동번역

(1:26)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쉬운성경

(1:2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과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갖 가축과 들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

(1:27)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새번역

(1: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 '아담'

(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 , '아담'

 

근래 들어 저를 참 자극한 노래가 있었는데요, 바로 김연아와 아이유가 함께한 얼음꽃이라는 노래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며 듣게 되었던 것이였는데, 좋은 가사와 당시 아이유의 무거운 목소리가 더해져 용기가 나게 해 주는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내용이 좋아서 가사 일부를 적어왔는데요,

넘어설 무엇도 뒤쳐질 걱정도 어느새 멀어진 그곳에서 빛날 필요없이 아름다운 나를 꿈꾸고, 눈길이 없고 박수 갈채도 없는 나만이 나를 바라보는 곳에 홀로 서 있을떄 거기서 웃을 수 있는, 날 사랑해 줄수 있는 내 모습을 믿습니다..

 

다른것도 다 좋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가장 제가 인상 깊었으며, 감동을 받았던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내 모습, 이라는 가사였습니다.

일전에 누군가가 너는 왜 너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어렸기에 잘 몰랐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참 무엇인가를 찾고 있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과, 누군가를 돕거나 사랑할 때에도 그때와 지금이 느낌이 참 다르다는 것, 다른 이유는 내가 누구인가를 조금이나마 찾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의 어원은 배울학 물을 문 자를 써서 배우고 묻는 법이라고 합니다. 근래에 들어 어떤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모든 학문의 출발이 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나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른 어떤 것들을 제외시키다 보면 나는 무엇이라 정의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며 평생동안 발견해야할 인생에 주어진 숙제일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니 스스로 자신을 발견할수록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라는 경험을 하게 된 것에 있었습니다. 어느덧 알량한 자존심보다는 스스로 혼자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을수 있는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서리치도록 느꼈으며, 정말로 나를 변화시키고 내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나 자신에게서, 자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고만을 하다보니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 질문은 성경에서는 우리를 무엇인가라고 정의하고 있는지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 볼 때에 오늘의 본문에서 성경은 가장 원천적이고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우리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창조자로써의 기질을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 또 본문에도 닮긴 했으나 다스리게 하자라고 나와 있는걸로 보아 creator가 아닌 operator로 창조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또한, 역학적인 원리나, 어떤 증명된 법칙을 이용하는 것은 발명이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operation 즉 운용의 목적은 어떤 행위나 생산을 효율적으로 한다거나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창조가 없는 운용은 발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을 관찰해보면, 굳이 가만있어도 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뭐라도 하려고 하고 개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창조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니, 사람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바로 관계 아닌가 합니다. 같은 시간과 생각, 혹은 글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이 되었든 서로 시간과 매체를 통해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그 공유로써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큰 창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라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미로처럼, 거미줄처럼 얽혀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에선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어딘가에서는 충돌이 발생하며, 또 수단과 목적이 바뀌면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또한 이 과정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지요, 좋든 싫든 간에 이 관계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만들게 되고, 또 그렇다고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아닌 만든 객체들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자, 가장 쉽게 만들어지면서도 또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자, 또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바로 이 관계가 우리를 만들고 또한 이 관계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자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통해 나를 본다거나, 이 관계를 통해 배운 것으로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 또한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수도 있게 되고, 나를 위해, 그리고 관계을 위해, 성찰하고, 노력하며, 개선하고, 행복을 추구하게 되지요.

이렇게 볼 때에 어쩌면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듬어 나가는 것. ,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야말로 발견보다 마치 대리석 덩어리로 조각을 하듯 다듬어 나가는 창조에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풀어야할 지상과제이자, 또한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과, 은혜이며 여기에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성경이 아닌가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어쩌면 창조라는 것은 하나님 당신 또한도 당신이 당신 되기 위한 창조가 아닌지 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길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저는 성경이 이런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다듬어나가는 것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 당신이 당신됨을 보이고, 어떤 이상향으로써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한 존재로써 관계하기 위해 완성하셨고, 나타나신 분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나를 만들고 다듬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또한 당신이 바라는 우리인지를, 우리의 삶을 위해, 흔히 말하는 잘못된 방향으로의 삽질을 좀 안 해도 되도록 방향을 잡아 주신 것, 완성을 위해 존재하는 책, 그것이 성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볼 때에 성서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정말 알맞은 말인 것 같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좀더 완전한 자기 자신을 찾고, 다듬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13~ 16을 보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자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그냥 불의를 따르지 않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되는 일일까요? 아마, 이 말이 단순히 착하게 의롭게 살라는 의미라면 기독교가 불교와 별 차이가 없을 듯 합니다.

여기에도 성경은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8:12를 보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빛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서는 예수와의 연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마음에 모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그 소금의 짠맛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우리가 빛이 되게하는 광명체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예수님이 없이는 우리가 빛과 짠 맛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예수님과의 관계속에 있을 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또한 우리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찾고, 바라보며 다듬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이 모든 것은 예수를 마음에 모실 때 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고자 성경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먹으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또한 자신과 이어져 있을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면 그는 완벽한 멘토로써 우리를 이끌고, 우리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면서 또한 그분이 빛으로써 우리를 비추게 되어 우리가 우리자신을 바라보고 또한 그분이 제시한 방향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듬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앞장서기도 하는데

예수님을 mentor, 친구, 가족으로 여기고 믿고 그를 따르는 것, 그를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회심의 시작이며, 예수님과의 관게라고 할 수 있는 기도의 출발점 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지금의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그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또 그가 원하는 길은 쉽지 않은 좁은 길인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어쩌면 믿음으로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은 말이 좋아 값없는 은혜지 그 은혜를 받기 위한 용기는 꽤나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고, 이 길이 맞는 길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항상 좀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일 아닌가 합니다.

 

 

 

 

 

정리하자면

1)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창조되었고, 또한 지금도 관계라는 것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며 스스로 완성되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2) 나와 다른 사람의 완성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3)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이를 위해 우리와 관계하고자 예수님이 나타났다.

4)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방법은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것, 관계하는 것이다.

가 결론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마음속에 예수님이 항상 계신지, 항상 그와 관계하고 있는지, 그에게 말하고,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성찰해보고, 아니라면 진지하게 나를 위해서, 예수님과의 관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과 관계하며 정도를 걷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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