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0 설교

 

지금 이 순간, 햇갈릴 때

 

(45: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45: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45: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45: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45: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45: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45: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45: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45: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45: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45: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최근에 몇몇 계기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거기서 커다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살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망령이 무엇이냐, 누구나 과거를 돌아볼 때에 좋은 기회가 있던 순간도 있었고, 잘 할수 있었는데, 본인의 능력이 됨에도, 어떤 부조리로인한 좌절이나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제에 악영향을 끼칠 때, 과거로 인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때 저는 그것을 과거의 망령이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10년을 되돌아보면, 저 자신에게 중요한 시기들을 수가 틀렸단 이유로, 예를 들어 실재로는 그럴수록 그때라도 다시 할수 있는걸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텐데, 사춘기떄도, “좋은 기회를 놓쳤으니까, 아예 공부고 뭐고 안해버릴 거야, 반항할거야, 그때 못했으니까...지금 해서 무슨의미야 그때처럼 좋은 기회가 있는것도 잘하는 것도 아닌데..” 같은 식으로 수가 틀려서 엇나가고, 또는 노력하기 싫어서, 현재에 안주하고 싶어서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는 했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그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그때가 늦은게 아니였는데, 틀어진게 아니였는데, 그때 왜 좀더 현명한 길을 택하지 못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럴 때 왜 나는 좀더 현명한 선택을, 노력을 하지 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최근을 포함한 어떤 과거의 상처, 또는 역경, 시련의 경험에 대해 어떤 자세로 그것을 대해야 하는가, 또 그에따라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샙이 애굽으로 끌려간 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하는 과정을 거쳐 끝내는 애굽의 총관에 오른 후, 심한 기근으로 이를 대비하지 못한 요셉의 형제들과 아버지가 상봉하는 과정을 담고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것은 요샙이 결국은 총관이 되어 끝내는 자신을 버렸던 형제들과 아버지를 구원했다는 사실보다, 이 과정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먼저 20, 공동 번역본을 보면, “가지고 있던 세간 같은 것은 아까워하지 말아라, 이집트 전국에서도 가장 좋은 땅이 그대들이 것이 될 것이다.” 라고 나와있는 구절입니다. 과연 이것이 쉬운 일일까요? 자신들이 여지것 살아온 모든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버린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지것 잘 살아온 기반을 버려두고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과연 쉬운 결정일까요?

또한 26절에서는 야곱이 요셉의 살아있음과 그가 총리가 된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냥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대뜸 대국의 총관이 되어있다니, 분명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참 어리둥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 모든 것을 이기고 28절에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라고 나와있습니다.

어쩌면 어려움속에 있는 구명줄인데 쉬운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의 다음 장을 살펴보면, 야곱이 두려워하니,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것이 자신의 계획임을 알려주는 구절을 살펴보니 이는 당시 야곱에게 쉽지 않은 결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야곱이 여지것 살아온 것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떠나지 못했더라면, 요셉이 살아서 총리가 된 사실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제와서 그게 무슨소용이냐, 그 아이에게 짐만 되지 말자꾸나 그냥 우리는 없던 사람처럼 살자... 하고 눌러 앉아버렸다면?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들이 버린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 요셉이 저난 말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아니면 이전의 본문속에 찾아볼수 있는 요셉의 고난속에 요셉이 아 진짜 왜이래... 나 운도 더럽게 없네.. 하고 낙심해버렸다면?, 또는 요셉이 과거의 일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가족을 벌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분명 하나님의 뜻과도 다를 것이고, 야곱, 이스라엘은 기근으로 말라죽고 출애굽은커녕 입애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중간에 낙심해서는 삐뚤어 졌다면, 야곱이 요셉을 안만났더라면, 살던곳을 버리고 떠나지 못했더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였을까요?

결론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좀더 사랑하는 방향이며, 낙심하고 포기하고 삐뚤어지기보다는 과거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경험을 버리고 현제 자신이 할 수 있는 현명하고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요셉은 애굽의 총관이 될 수 있었고, 형제들 또한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며 아버지 또한 기쁜 마음으로 요셉을 보러 출발하고, 이로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고는 합니다. 더 좋은 무엇인가를 위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하는 순간도 있고, 노력하는 것이나, 새로운 것이 두려워서, 또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내 생각을 버리는 것이 힘든 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도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정말 원하고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지, 포기하고 가만히 있거나, 당장 조금 편하다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버려두고 현실에 안주한 삶을 살거나, 과거의 상처에 매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또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일까요?

그런 것은 하나님도, 저도 원치 않는 단순히 안주하거나, 또는 제살 깎아먹는 치기에 불과한, 현명하지도 못하고, 사랑도 없는 그저 어리광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제에 충실하고, 과거에 매이지 않으며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려가며 더 나은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자세라는 것을 오늘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낙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에, 심지어 가지고 있던 관념이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을 때 그것을 버리는 일 마저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으며, 요셉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과거에서 벗어나 현제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함을 믿는 것, 또한 우리에게 좀더 나은 것을 주고자 하심을 믿는 것, 이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과거를 벗어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어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이끌게 합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가 틀린 것이 두려워서, 내가 버려야하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노력하는 것이 고통스러울까봐 두려워서. 후회가 두려워서,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이 두려움을 의미없게 만들고 따라서 사람으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두려워할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속에서 오는 역경이 과연 인간이 견뎌내지 못하는 역경일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역경을 주고자 하신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적이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떤 어려움이기 보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과 맞는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그것은 결론적으로 그것이 덕을 세우느냐 아니나로 구분지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이오갑 교수님 수업을 들으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어떤 서로 상반되는 생각, 예를들어 술에 취해 방탕해지는것과 좀 힘들지만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에 자신이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자신을 망가트리는 경우와 정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경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칼뱅의 서적중에 있지 않았는가 합니다. 진짜 지향성에 대해.] 이 얘기가 생각이 나서 예전에 쓰면서 살펴봤던 몇몇 칼뱅에 관련된 문헌을 살펴보기도 했는데요, 칼뱅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문제, 일명 아디아포라 라고 부르는 문제에서는 결국 덕을 쌓는 방향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또한 성경도 전체적인 맥락은 결국 주변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물 28절을 공동번역에서 살펴보면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내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니, 죽기 전에 가서 그 애를 봐야지." 하고 이스라엘은 중얼거렸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움직인 이유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지금 가지고 있는게 아까워서, 또는 가서의 일이 걱정되서 가만히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뿐이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구제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것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애굽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결론지어 어떤 변화가 생길때나, 과거가 발목을 잡을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는지를 성찰해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두려움보다 담대함으로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매여있지 말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고 지양하는 자세입니다.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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