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극좌표와 직교좌표를 함꼐 볼 가이드가 있는 방안지를 찾다가 없어서 걍 만들었다.

극좌표용.pdf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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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모임을 하게 되어 급하게 준비했던 원고입니다.

구어체이며, 창피할만큼 부실한 글이니 그냥 가볍게 읽어보실분만 읽으시길..

 

오늘은 여러분과 종교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둘러보면 수많은 종교적 문제들이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피의 역사 뒤에는 종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쟁이 그러했으며,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도 그러했고, 지금도 팔래스타인 지역에서는 분쟁이 이루어지고 있고, 흔히 뉴스에서 볼수 있는 많은 비리와, 이해할수 없는 행동 뒤에는 언제나 종교인이 있죠.

뭐 사실상 역사속에서 종교는 언제나 부패해왔고, 문제를 일으켜왔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이것을 사회악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고 할수 있죠

그런데, 역사속 이성적인 사람이 없던것이 아니고, 또한 종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없던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종교라는것은 인간사회와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전세계에 깊이 스며들어 있고, 또 오늘날 크리스트교는 많은 종교들중에서 살아남아있죠, 심지어 여러의미로 왜곡되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리처드 도킨슨마저도 만들어진 신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이 아는 한 신부를 존중한다고 언급합니다. 사실 굳이 리처드 도킨슨이 아니더라도 많은 무신론자들이 종교를 존중합니다.

, 종교란 무지한 자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던가요? 이성을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던가요? 왜 무신론자들도 기독교인을 욕할지언정 기독교 자체는 존중하고 있을까요.

이것엔 무엇이 상관하고 있는지 저는 여러분과 얘기해보려 합니다.

 

사실 다른종교들을 함깨 얘기하기에는 너무 범위가 크고 넓고, 조로아스터교나, 수메르신화 등등같이 익숙치 않은 이름의 종교마저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트 교(기독교란 개신교와 카톨릭을 포함하는 단어이다)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수있는 종교로 인한 분쟁, 그리고 사회적 문제가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그렇다면 정말로 종교가 추구해야할, 많은 문제를 일으킴에도 여지것 사라지지 않을수 있었던, 존중받을수 있던 이유로 볼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좁은 식견으로 한번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 먼저 종교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종교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우리는 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왜 종교와 사회가 깊은 관계가 있는지 드러나는데요, 그것은 바로 에초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출발과 종교가 깊은 연관이 있기 떄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체계적 학문이란것은 종교를 계시하기위한 연구에서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 신학에서 철학이 나왔고, 철학은 수학을, 수학과 철학이 자연과학을, 그리고 최근에 분리된 100년도 안된 과목이 심리학이죠.

 

먼저 다른 종교에서가 아닌 종교학에서는 종교를 이렇게 봅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이 어느정도 해결되면 매슬로의 욕구단계 이론에서도 볼 수 있듯 다른 가치를 찾아 나섭니다.

여기서 과연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떠오르는 의문은 무엇일까요,

나는 누구인가, 또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아주 원초적인 질문이죠?

그 고민부터를 종교학에서는 종교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에초에 이 지점에서 우리의 삶과 종교라는 개념이 때놓을수가 없다는점을 알수 있는데요, 굳이 무슨무슨 교라고 규정하지 않는이상 어떠한 특정 믿음이란 것 자체를 종교적이라는 개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에초에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는것들은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옳다고 믿는것이라는 점입니다.

아이슈타인도 현재 대새인 양자역학에 대해 끝까지 부정하고 싶어했으며,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어렵기에 아직도 통합과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진실이라고 믿고있는것마저도, 어떻게 보면 우리의 믿음을 배신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죠.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수 있는 과학도, 어떠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데 일생을 보내고 그중 살아남은 것이 진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하기까지는 진리가 진리가 아니며 그저 믿음뿐일 무언가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렇게 볼 때에 학문이란 특정 방면에서 매우 진보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모순점이나 역설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하며, 또한 설명을 하고자 하기에 이는 누가 보아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합리성을 중시하기에 이중잣대가 드리워지는일도 별로없고, 전문가가 아닌이의 압력이 대중이 알게되는 보편적인 진리를 날조하지도 않죠.

이렇게 볼 때에 종교란 결론적으로 특정한 법칙 내지 섭리가 존제한다는 믿음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접하고 종교라 생각하는 종교는 그렇지가 않죠, 그 부분은 어떤의미로 규정하고 말로 모든걸 설명하기 어려운 인문학과 비슷한데요,

먼저 결론을 내놓고 시작하자면

간디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는 좋아해도 예수를 믿는 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모든 악행을 저지른다(in nomine Domini committitur omne malum)” 유대인의 속담입니다.

 

저는 종교가 계속해서 문제가 됨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건 그곳에 우리가 무시할수 없는 어떠한 가치가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저만의 답을 도출해냈으며,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기서 기독교가 가지고있는건 무엇이며 또한 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주목했는데요, 살펴보면 사실상 성경이라는 책속의 이야기들을 전부 시대착오없이 해석한다면, 가장 휴머니즘적이며, 또한 유일하게 다른 종교와 달리 기존 기득권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에초에 창세에서 신아래 모든인간이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각종 율법들을 보면, 최소한 이정도는 너희들이 지키고 살라는것이였고, 예수에 이르러서는 과연 어떻게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뭐 여담으로말하자면 성경에도 돼지고기 먹지말라는게 있고, 각종부정한것에대한 언급이 있는데요, 이를 당시시대에 맞게 해석하면, 돼지고기는 그지방에서 키우다간 곡식을 축내서 빈곤층을 더 위협했고, 부정한것또한 위생이나 생활 전반과 관련이 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전통에서 산모가 출산전 집안을 정리하는 전통이 있는데, 우리는 단순히 그것을 어떤 종교적 의미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 전통의 시작에는 과거 출산시 산모의 사망률이 높던 시절 일종의 죽음을 준비하는 절차였던 것처럼요.

 

또한 많은 부분들, 그 안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유명한 기사들에서 기존의 체제를 깨트리고 반대하는 자유의 상징이라고 부를수 있을 만큼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대한건 르네지라르의 희생양이론을 살펴보면되는데 기니까 생략하죠.

 

여튼 현대에 와서 문자적으로볼 때 좀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나름 그때의 시대정신에 입각하면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들을 담고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현대에 맞게 바뀌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있는게 많을뿐이란 거죠

 

가만보면 말이죠 종교는 항상 도덕적 윤리적 관념을 제시하고 이상향을 만들어냅니다. 사실 다른 학문처럼 발전했으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겁니다.

아니 에초에 휴머니즘, 도덕관념 등은 종교에 뿌리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을 권장하거나 강제할 수단은 종교이외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법이외의 많은 영역에서 도덕윤리를 배우는 수단이자 뿌리가 되고 권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죠. 사실상 이게 종교의 순기능중 하나고 방향성일겁니다.

 

 

근데말이죠, 흔히 우리가 말하는 꼰대들과, 정치세력들의 욕심이 이를 변질시킵니다.

교회다니면 술담배 말라하죠? 그거 사실 성경에 근거 없습니다. 그거 옜날에 국채상황 운동때 한기총이라는 단체가 술담배 끊고 그돈 보태자한것부터 시작한 전통입니다.

근데 지금와서는 각종 억지를 끌어다 근거랍시고 들이대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의 교회들이고, 또 변화를 싫어하는 교회안의 어르신들이죠, 사실 칼뱅과 루터도, 어거스틴의 입장도 쾌락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남용이 문제다라고 말하는데말이죠.

, 여튼 이렇게 제대로 지키지도 못할 멍애를 스스로 뒤집어 쓰고 지키지도 못할 것들을 약속하는것까진 좋습니다.

좋아요 근데말이죠, 사실 모든 종교나 이념이 그렇듯 극단주의자나 근본주의자, 그리고 광신자들이 자신들이 믿는것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요? 그러면 절대 그런언행 못합니다.

또한 그것이 항상 순기능만 할까요? 절대아니죠,

에초에 기독교는 예수가 한짓들만봐도 기득권을 반대하고, 어떠한 이상적인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정의롭고, 자애롭고, 행복한 곳을요.

사실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는 예수라는 인간이 지향해야할 어떤 완성점을 두고 그것을 구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하나의 이념입니다.

함께 더불어 사랑하고 사는 것, 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게 다르니까 여러 방법으로 이를 서술하고 있죠, 어린애다루듯 뭐안하면 벌준다 식으로 말하기도 하구요.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나누고, 보듬고 교제하는곳을 교회라고 하는데요, 에초에 이 어원도 모임이라는 뜻의 헬라어 에클레시아입니다. 이렇게 볼떄에는 사실 교회로 유명한곳은 이미 교회가아니고 기업이라 봐야하는데요. 진짜 교회라 할만한곳은 힘이 없기에 사회속에서는 안알려지고 묻힐 수밖에 없죠, 이건 현사회의 구조적 문제니 넘어가고

여튼 교회라는 단어는 예수를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분명 뭔가 이렇게보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것들이 왜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까요?

이건 다른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크리스트교의 성경이 얘기하던 천국, 즉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제도로써 만들어내고자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 바로 막스입니다. 다만 막스는 예수와 달리 인간을 너무 믿었고, 실패했죠. 그런데,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물을 보면 이상한게 있지 않나요? 막스의 저서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북한과 중국 정부는 말이 안되는게 많습니다.

왜일까요? 에초에 막스의 유토피아가 목적이 아닌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중국과 북한정부가 통제해야할 것중 하나는 막스의 이론에 대한 깊은 탐구를 대중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각종 종교나 이념들도 마찬가지죠, 이것은 언제나 순수한 어떤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는데, 항상 거기에 인간이 끼어들어서는 아름답지 못한 것을 위한 도구로 써버립니다.

신나라 레코드만 봐도 알수 있고, 최근의 성폭행 사례를 봐도 알수 있죠,

에초에 잘 살자고 인간이 발전해야할 이상향으로써 나온건데, 개인의 영달을 위하는 순간부터 또는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순간부터 이것은 이미 그 가치를 잃어버린것일테고, 이는 크리스트교가 아니라고 봐도 무관할 것입니다.

사실 위에서 말한 술담배부터 취지는 좋지만 변화가 싫어서 정당성을 억지로 부여하는것도 이미 종교의 진의에 불순물이 섞인겁니다.

 

언제나 목적과 수단이 바뀌는것과 불순물이 섞이는건 문제를 일으킵니다. 지도자를 볼까죠? 권력은 분명 수단입니다. 단체가 잘되도록 이끌기위한.

근데 이게 목적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죠?

 

 

 

그럼 우리는 이것을 바라보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과연 종교는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할까요? 이미 얘기하면서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에초에 종교는 각자가 지니고있는 이른바 헌법이라 불릴 진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보나, 철학적으로 보나, 매우 아름답고, 지향할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종교가 지녀야 할 지향성입니다.

사실 이외의 것들은 이 헌법을 방해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미 필요없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되야하는게 맞죠. 그런면에서 우리는 이미 글귀를 가지고 까부는 많은 사람들을 거를 수 있습니다. 또한 광신도도 믿고거를수 있죠. 사실 이건 과거의 많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뭐 이런사람들이 분명 경고했고 주의했습니다. 그저 인간의 욕심과 편협에 의한 결과물일 뿐이란거죠.

 

우리는 숲을 보고 목적과 수단을 분명하게 인지해야합니다. 또한 많이 알고 합리적인 태도와 이성적 날카로움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기만한다면 당신이 종교인이라하더라도 가로 빠지지 않을거고, 비종교인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존중해야할 종교인과 아닌사람, 그리고 받아들이고 수용할만한 가치를 구분할 수 있겠죠.

사실 정보의 출처와 근거를 분명히하고, 날조인지, 또는 왜곡인지만 살펴도 단순한 광신 내지는 혐오로 빠지지 않을겁니다.

왜 받아들이고 수용해야할 가치를 구분해야하냐구요? 그건 우리가 지성인이기 때문이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입니다.

 

또한 무언가 비틀린 잘못된 종교라한다면 우린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왜냐면 그런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있거든요. 아 물론 이것은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선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하며 그것을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고있다는것에 기인한 저의 믿음입니다.

 

뭐 사실 이것저것 제가 얘기한 많은부분들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야하고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만, 제가 살펴보고자한건, 종교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보고 가져야할 지향성에 대해 논하기로 했으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인간과 종교는 때놓을수 없는관계란 점과

이것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이성에 근거하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기반한 자기주관을 형성해야한다는 것. 사실상 이 이야기는 종교에국한된게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들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creator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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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곡선 함수 & 역쌍곡선 함수


1. 쌍곡선 함수

정의

정의역
모든 실수
R
R
치역
모든 실수

-1<y<1
성질
기함수

우함수

기함수

그래프

점근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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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만, x의 값이 아주 클 때에 가 성립한다.
** 


2. 쌍곡선 함수의 성질과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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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쌍곡선 함수
 

정의

정의역
모든 실수

-1<x<1
치역
모든 실수
0<=y
모든 실수
성질
기함수
arcsinh(-x)=-arcsinh x
기함수
 arctanh(-x)=-arctanh x
그래프

여기서 forcus를 정의역과 치역에 맞춰야 한다.
y=sinh x =에서 역함수를 만들기 위해 x-y 대칭을 시키면
x=sinh y =에서 y=arcsinh x가 되고
여기서 기존의 x의 정의역은 R이고 y의 치역은 R인 상태에서
서로 뒤바꼈으므로 x의 정의역은 Y의 R (기존의 치역) , y의 치역은 X의 R(기존의 정의역)
이 된다.
x=sinhy를 y에 대해 정리하려면,
가 되고,  에서 이므로

t를 곱해주면 에서 이 되는데, 여기서  과  에서 t>0이므로 는 탈락,  가 t의 값이 되고, y=ln t 에서 로그를 취하면= arcsinhx 가 된다.

이건 arccoshx 의 값을 구할때도 마찬가지로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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