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로에스와 이중진리론
목차
l 서론 : 이중진리론 이란?
l 이중진리론 아베로에스
l 아베로에스와 알 가잘리의 논쟁
1. 철학과 신학의 대결
2.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 그리고 신플라톤 철학
3.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븐 루시드와 알 가잘리의 논쟁
가. 제 1논쟁
나. 제 2논쟁
다. 제 3 논쟁
l 논쟁의 평가와 아베로에스의 영향
l 참고 문헌
이중진리론이란?
이중진리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합리주의다. 합리주의는 종교와 철학이 부딪히는 문제 속에서 일어난 시도로 이성과 신앙, 또는 철학과 신학에 대한 구분은 중세에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가치를 높이든 어거스틴, 안셀무스 같은 초기 중세 사상가들이나,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시도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스콜라철학자들이 속해있는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만 일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세 그리스도교 안의 철학과 신학의 구분은 인위적인 것으로 철학과 관련된 주요 사상가들은 모두 신학자들이었고, 그 세계의 철학적 작업들 대부분이 인문학보다 신학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는 신학과 철학의 구분이 인위적인 것이 아닌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나타났으며, 그 구분도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인정된 것이었다.
이슬람의 사변신학은 코란의 해석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을 둘러싼 전통에서부터 성장한 토착학문인데, 반면에 철학은 9세기에 유입된 그리스 문헌들에 대한 연구로부터 직접 전해진 이방학문이다
이 와중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같은 신학과 적대적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철학이 알려졌고, 신학자들과 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결국 적대적인 입장에 처하게 됨으로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는 “신학과 철학은 서로 양립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에 토착신학의 우선성을 강조하며 이성의 역할을 폄하하는 신앙주의에 대항하여 합리주의가 생겨나게 되었고 최초의 합리주의자라 할 수 있는 알파라비는 종교를 철학의 노예라고 주장하기까지 하게 되는데. 이에 다시 합리주의 흐름에 반기를 들며 알 가잘리 라는 학자는 철학자들의 모순이라는 작품을 저술하는데 그에 의하면 모든 철학적 학문은 인간 이성의 힘에 과도한 맹신과 자만을 가져다주며 신학에 주관적 위험을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알파라비의 합리주의에 의해 제시된 내용인
1. 사후 신체의 부활에 대한 부정
2. 특수자들에 대한 신의 인식가능성의 부정
3. 세계가 영원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펼치게 된다.
(부연설명으로 알 파라비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플라톤주의를 어느 정도 결합시키고 그 토대위에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알 파라비의 철학적 경향은 아비센나와 아베로에스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최고의 지성으로 인식하는 아베로에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대상으로 삼기에 철학과 이슬람교가 추구하는 진리는 결국 동일하며 종교는 단지 상상할 수 있는 표상과 설득의 방식을 좋아하는 자들이 따르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철학은 합리적 논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적합한 진리추구의 방식이므로 종교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의 입장을 가지고 이슬람을 재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이슬람의 모든 영역, 변증법적 신학, 신조, 꾸란 법, 문법, 시 등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했고 이성으로 이슬람의 계시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주 저서인 『편지의 책』에서 종교는 완전한 철학에 의존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철학은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서 종교보다 더 우위에 있으며 완전하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일자(the one)[1]는 유출의 출발점이며 유출설의 공식에 따라 제1원인인 일자로부터 몇 가지 예지적 존재들이 유출되며, 서시서 천상의 세계, 지상의 세계가 유출되는 것으로 창조개념을 이해했다. 그에게 있어 능동지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고하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그는 이런 논리적 구분을 피조물에게 나타난 본질과 실존간의 실재적 구분의 표지로 간주했다. 그에게 창조물은 그 자체가 가능존재이며 가능존재는 원인에 의해 실존이 주어졌을 때 실존할 수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 입장에 신플라톤주의적인 방법으로 신학적 경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이성의 역할을 중시하며 예지체를 사용, 우주의 원리를 설명했다. 이러한 신 개념은 꾸란의 개념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2])
이러한 주장은 중세 이슬람 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에서도 논란거리였고,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운동의 절대적 시작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는 시작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이슬람 철학자들은 세계의 영원성을 철학적으로 증명되며 필연적인 것이라 결론짓지만 이슬람교는 시간 속에서의 창조를 진리로 받아들이며 세계의 영원성을 부정한다. 이는 코란이 세계가 창조되었으며 시작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앙과 이성이 부딪침 따라 나타난 합리주의 흐름 중에서 중세 이슬람 철학자중 가장 대표적인 합리주의자가 바로 아베로에스인데, 그는 다시 알 가잘리의 공격에 대해 「철학자들의 모순」 이라는 작품에 대한 철학적 반박으로 「모순의 모순」 철학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종교적 믿음들의 증명 방법에 대한 설명」, 철학자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율법적인 관점에서 정당화를 모색하는 「결정적 논고」를 쓴다.
이중 결정적 논고는 우리가 눈여겨 봐야하며 서구 문명사의 이정표라 평가될만한 책이기도 하며 이중진리론의 근간이 되는 저서이다.
아베로에스는 철학과 논리학의 연구는 율법에 의해 허용되는지 금지되는지, 아니면 명령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이 책에서 던지는데, 그의 논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 코란은 이슬람교도에게 철학을 하라고 명한다.
2. 신학과 철학은 상호 반대되지 않는다.
3. 대중들의 신앙을 의심하게 하는 미묘한 논증을 함으로 이슬람교에 위험을 제공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모든 존재들에 대한 연구이며 이때 존재들은 바로 그 존재들을 있도록 만든 창조자 신을 닮아 있음을 지시한다. 한편 율법은 모든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사용함으로 창조자 신을 가리키는 존재들에 대해 반성하라고 명한다. 따라서 철학은 율법에 의해 의무적이라 결론짓는다.
또한 그는 율법이 명한 것은 인류에게 개방된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따라서 사람들이 지성을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알려진 것으로부터 미지의 것을 추론하고 도출한다[3] , 또한 철학을 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우연적인 폐해를 감안해야 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아베로에스의 합리주의는 당대 이슬람 세계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결국 철학을 박해하는 분위기로 그는 유배를 당하고, 그의 저작들은 모두 불태워지게 된다. 그 와중 코란이 아니라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였던 파리 대학 인문학부 교수들 가운데 아베로에스를 철학의 스승으로 존경하고 그의 합리주의 노선을 쫒아가고자 했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로 인해 아베로에스라는 이름은 기독교 세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는 당대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의 근간으로 채택한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해석과 합리주의노선이 당대 기독교 교리와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라틴 아베로에스 주의자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에 의해 공개적 비판을 받고, 1270, 1277년 두 번에 걸친 단죄의 대상이 된다.
당대 신학자들에 의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모순된다고 평가되는 그들의 철학적 이론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이중진리론이다.
이중진리론은 성경에 계시된 진리와 필연적인 원리들로부터 논리적으로 연역된 철학적 진리, 즉 상호 모순적인 두 진리가 양립 가능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면 세계는 창조되었고 시작이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기에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심할 수 없는 계시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반면, 운동의 절대적인 시작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변을 쫒아서 철학자로서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거부하고 세계의 영원성을 논증한다면 그것을 이중진리론이라 부를 수 있다.
이중진리론과 아베로에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13-4세기 기독교세계 뿐 아니라 현대 주석가들도 라틴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주장이라 평가되던 이중진리론의 원조를 아베로에스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이중진리론의 원조는 아베로에스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정적 논고 2장에서 나타나 있는데 아베로에스는 철학과 신학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 종교(율법)는 참이며 진리의 의식에로 이끄는 연구를 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우리 무슬림 공동체는 논증적 연구가 경전에 적혀있는 것과 충돌하는 것으로 이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안다 왜냐하면 진리는 진리에 반대하지 않고 진리와 일치하고 진리를 입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베로에스는 철학적 진리가 신학적 진리와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는데, 코란의 진리와 필연적인 원리들로부터 논리적으로 연역된 철학의 진리는 서로 모순되지 않고 일치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인 전제에서 이러한 이중진리론은 아베로에스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신학과 철학의 충돌에 대해 신학과 철학이 동일한 사태의 세계에 대한 주장을 하기 때문에 그중 하나가 거짓된 주장을 한다면, 둘 간의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충돌하는 신학과 철학의 관점은 철학자들에 의해 우의적으로 읽혀져야 하며, 그들만이 그 내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진리의 최종 중재자는 바로 철학자임을 말한다. [4]
정리하자면 아베로에스는 철학과 신학 간에 실제로 일어나는 충돌을 두 학문이 상이한 방식을 사용할지라도 동일한 실재와 연관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철학과 신학이 동일한 실재를 기술하기 위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하나의 진리만 있을지라도 그것은 상이한 방식으로 접근될 수 있다. 그 두 가지 방식은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합하다.[5]
결론적으로 그는 모순되는 두 진리가 동시에 참임을 주장하는 이중진리론의 주창자가 아니다. 신학은 그 자체의 목적에 유용한 도구들을 철학에서 빌려올 수 있다는 그의 입장은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의 접근 방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철학이 신학보다 우월하다는 점 즉 에매한 말들로 이뤄진 것은 철학으로써 정확히 정할 수 있고 철학이 신학을 밝혀내는 도구라는 점은 그들과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아베로에스는 철학적인 이슬람 합리주의자에 가깝고 이중진리론은 이후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 기독교 세계 내에서 만들어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아베로에스의 이중진리론을 설명하자면 이중진리론이란 아직 정확히 정의되지 않았거나 과거 철학과 신학의 과도기에 잠시 나왔지만 지금은 새롭게 정리된 하나의 학문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라틴아베로에스 학파의 이중진리론은 신학과 철학은 독립된 지식의 원천으로서 신학과 철학이 서로를 손상하지 않고 모순되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견해인데 당시 이는 철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두 가지가 모순된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 모순된 두 가지가 다 진리라는 것이다, 즉 철학적으로 신이 없지만 신학적으로 있으며, 세계의 시작이 신학적으로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시작이 없으며, 신학적으로 종말이 있지만 철학적으로 세계는 영원하다. 즉 기독교를 예로 들자면 신학적으로 예수는 실존했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전설일 뿐이며, 조금 더 생각해서 예를 들자면 지구의 나이가 성경적으로 6000년이라 설명하는 사람들과 과학자들 간의 대립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또한 견해가 갈리는 것으로 진화론 또한 창조의 방법이자 일부다 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즉 양극간의 서로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이 동시에 진리라는 과도기적으로 일어난 하나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아베로에스의 주장은 결론적으로 진리는 하나로 통합되는 것으로, 이를 현대에 와서 정리하자면 서로 모순될 수는 있으나 그 과정의 끝에 있는 진리는 하나다. 라는 입장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 예를 들어 말하자면 빛을 광자라고도 부르며 광파라고도 부르는데 물리적으로 증명된 바로는 빛이 파동이자 입자이기도 한 것으로써 설명할 수 있겠으며,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주장은 한쪽이 우연히 잘못된 주장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베로에스와 알 가잘리의 논쟁
아베로이스가 이중진리론의 주장자가 아니라 합리주의의 수준적 구별자라는 것을 증명하기위해서는 모순의 모순에서 알 가잘리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반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와 그 논쟁의 배경을 볼 필요가 있다.
1. 철학과 신학의 대결
알 가잘리와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는 각각 중세 신학과 철학은 대표했던 인물로써, 양자 간의 치열한 논쟁은 흔히 종교와 철학간의 대결로 표현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븐 루시드는 오늘날까지 그리스 철학의 계승자로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있다.
그는 12세기 무렵 동서양을 막론,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였다. 그는 평생 26권에 달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주해를 남겼다.
이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6]알 가잘리는 정통주의 신학을 대표했던 인물로써 철학자들을 비판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전통적으로 무슬림 신학자들이 꾸란에 나타난 알라의 모습을 이해한 방식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알라는 엑스 니힐로적인 창조주이다.
2. 알라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분명히 활동한다.
3. 알라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인류를 인도한다.
4. 피조물은 어떤 식으로든 알라를 직접 인식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와 같은 철학자들이 정립한 유출론과 우주론은 전통적 이해 방식과 전혀 달랐기에 보수 신학자들은 용납 또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일부는 철학자를 배척하고, 심지어 박해를 가하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알 가잘 리가 『철학자들의 부조리(Tahafut-Falasifa, 1095)』를 통해 철학자들이 범한 오류를 20개 항목에 걸쳐 비판한 것이다.
그 중 특히 세계는 영원하다라는 주장, 알라는 보편적인 사실만 인식할 뿐 개별적 사실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다, 육체적 부활은 불가능하다 등의 3가지 항복은 불신자의 죄에 해당하다고 판결했다. 즉 불신자 취급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는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가 극치에 달했음을 발견 했고, 이 때 고대 철학가들을 반박하기 위한 저서를 집필하게 되었다. 이는 신학과 관련하여 그들이 범한 사상과 말의 모순을 밝히고 그 페혜와 약점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상기한 세 가지 문제는 결코 이슬람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을 믿는 자는 예언자들의 말씀을 불신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씀이란 당지 대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명백히 불신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무슬림 가운데 그 것을 믿었던 자는 아무도 없다.』
이븐 루시드는 이러한 알 가잘리의 공격이 부당하다고 여겼고, 거기에서 『종교와 철학의 조화에 관한 소고』, 『논증의 방법론 성찰』, 『부조리의 부조리』와 같은 세 권의 반박서가 나오는데, 여기서 알 가잘리와 마찬가지로 20가지 항목에 걸쳐 자신의 입장을 밝혔으며, 핵심적 3가지 주장이 모순임을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알 가잘리의 철학자들에 대한 3가지 비판이다.
2.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 그리고 신플라톤 철학
[7]먼저 이 논쟁을 다루기에 앞서 우리는 이븐 시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븐 시나는 알 파라피의 주석가도로 유명한 인물로써, 알 가잘리의 3가지 불신자 논쟁의 주장을 하도록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의 유출론은 신플라톤 철학의 유출론인데, 이 신 플라톤 철학의 유출론은 보수적 무슬림 학자에게 많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8]7세기 이슬람의 등장 이후 신플라톤주의를 비롯한 영지주의 계열의 종교와 철학은 이슬람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세계에서 탄생한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의 우주론, 수피주의 쉬아파 철학, 조명철학 등은 모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지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슬람 세계에서 이런 영지주의 계열의 철학과 신학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무슬림은 대부분 페르시아 출신, 또는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가 탄생한 지역이었는데, 이것은 영지주의 계열의 사상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페르시아는 기원 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이후부터 그리스 학문을 꾸준히 접해왔고, 기원 후 5세기 사산조 시절에는 시리아지역에서 추방된 기독교도들을 주축으로 번역학교를 세워 그리스 철학을 적극 수용했다. (아마도 페르시아인들 에게 있어서 신플라톤주의와 같은 영지주의 계열의 철학은 자신들의 전통 종교에서 엿보여지는 세계관과 잘 부합되기에 매우 친근감을 느꼈고 선호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의 정복 이후 그들은 많은 문화적 환경의 변화로써 이슬람으로 개종해야했고 꾸란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받아들이면서 아랍어도 익혀야 했다. 하지만 정통적으로 계승되어온 영지 주의적 사고관은 페르시아 출신 무슬림들에게 여전히 신과 우주를 바라보는 틀로서 작용하고 있었고, 따라서 꾸란을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즉, 꾸란 해석을 새로운 영지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써 유일신 알라, 창조, 계시, 예언자들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던 것이다. 그 결과 신플라톤주의의 용어와 도식을 차용하여 자신들의 지적 환경에 맞게 변용하고 새로운 종교철학의 정립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선구자가 바로 알 파라비(al Farabi, 870-950)와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였다.
알 파라비의 철학은 플라톤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의 형이상학과 우주론은 신플라톤주의로부터 많은 개념을 빌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정립한 유출론적 우주관은 11세기 무렵 페르시아 출신의 무슬림 철학자 이븐 시나에 의해 가다듬어지고 발전하였다. 이븐 시나는 알 파라비의 유출론을 그대로 답습하며 우주의 세계를 설명하였고, 따라서 알 가잘리의 논쟁의 시발점을 알 파라비와 그것을 발전시킨 이븐 시나의 주장으로 볼 수 있다.[9]
이븐 시나의 [10]신플라톤 철학은 이슬람과 전혀 다른 창조 개념으로, 알라가 영적 존재만을 유출시킬 뿐, 지상의 역사와 매우 무관한 매우 초월적이고 외재화된 존재이다. 또한 알라는 지상세계와 근원적으로 단절되어 있음을 도식적으로 설명한다.(아래 참고)
필연적 존재 (Necessary Being = 神 )
제 1 지성체 (The First Intellect)
제 2 지성체 (The Second Intellect)
제 3 지성체 (The Third Intellect)
제 4 지성체 (The Fourth Intellect)
제 5 지성체 (The Fifth Intellect)
제 6 지성체 (The Sixth Intellect)
제 7 지성체 (The Seventh Intellect)
제 8 지성체 (The Eighth Intellect)
제 9 지성체 (The Ninth Intellect)
제 10 지성체 (The Tenth Intellect)
(능동 지성체 = Active Intellect)
생명소멸의 세계 (World of Generation and Corruption = 지상세계
알 가잘 리가 문제 삼은 3가지 핵심 논쟁은 바로 이 창조론 논쟁과 관련되어있다. 즉 3가지 핵심논쟁에서 이븐 시나는 전형적 이슬람의 창조론과 우주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알 가잘 리가 소개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은 모두 이븐 시나의 『치유의 서』와 『구원의 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븐 루시드와 알 가잘리의 논쟁
그러므로 본론으로 돌아가 여기서 이븐 루시드의 반박에 유념해야 할 점은 알 가잘 리가 공격 대상으로 의도했던 철학자와 이븐 루시드가 방어의 대상으로 삼은 철학자가 다르며, 이븐 루시드는 철저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계승자로서 신플라톤 철학과 연관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따라 오히려 이븐 시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곡해한다고 보았고, 그에 따라 이븐 루시드 또한 알 가잘리와 마찬가지로 이븐 시나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그의 반박 의도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는 알 가잘리가 가진 시각, 즉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븐 시나의 철학이라고 착각하여 확대해석하며[11], 불신자 선언과 같은 율법적 잣대를 휘두르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또한 그의 입장에서 알 가잘리는 결코 이븐 시나의 철학적 지식을 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의 학문에 대한 방어와 올바르지 못한 추론방법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12] 이것이 바로 3가지 논쟁에 드러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제 1논쟁 : 철학자들은 세계가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세계가 영원하다는 주장)
이것은 세계 창조의 의견 대립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슬람 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ex nihilo 즉, 무로부터의 창조를 주장해왔다. 이에 반해 이븐 시나는 물질세계의 창조주임을 부인한다. 여기서 (이 논문 상에서) 그는 영혼/물질 의 관계를 선/악의 관계로 보는 극단적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었고[13] 따라서 순수한 선의 실체로서의 알라가 악의 원천인 물질을 만들어 냈을 리 없었다고 믿었다. 그의 견해(또는 당시 이슬람 철학자들)에 따르면 물질이란 결코 알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단지 영원한 시간부터 존재해 왔다. (이는 흔히 세계의 영원론 이라고 불린다.)이를 알 가잘리는 알라의 창조 능력을 부정한다고 보았다. 알 가잘리는 이를 저서 『철학자들의 부조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과연 당신은 세계가 영원의지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세계가 존재해야 할 때, 영원 의지는 세계의 존재를 명한다. (중략) 과거의 시간 속에서는 알라가 세계의 존재를 의지하지 않았고, 따라서 세계는 창조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창조 바로 그 시점에서, 알라의 영원의지는 세계의 존재를 의지했고 따라서 세계가 창조되었던 것이다. 과연 이러한 나의 생각이 틀리고 잘못 되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14]』
이에 이븐 루시드는 알 가잘리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한 가지 본질적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로부터의 창조가 꾸란에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는가?” 였다. 그는 이를 『종교와 철학의 조화에 관한 소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며, 꾸란은 무로부터의 창조론을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꾸란은 오히려 세계의 창조 이전에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3가지 꾸란의 구절을 예로 해설을 덧붙였다.
『“알라는 육일 동안에 하늘과 땅을 창조 하셨다. 그리고 알라의 권자는 물위에 있었다(꾸란11:7)”.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액면대로 받아들이자면, 현존재 이전에 다른 존재가 있었으며 그것은 바로 권좌와 물이다. 또한 천체의 운동 횟수를 기준으로 한 현시간 이전에 다른 어떤 시간이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날 지구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하늘도 그렇게 될 것이다(꾸란 14:48).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액면대로 받아들이자면, 현존재 이후에 다른 제2의 존재가 있게 될 것을 의미한다.』
『“알라는 하늘을 돌아보셨고, 그 때 하늘은 연기였다(꾸란 41:11)”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액면대로 받아들이자면, 하늘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창조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5]
이와 같이 이븐 루시드는 알 가잘리의 주장이 꾸란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는 세계 창조론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따르면 세계가 무로부터 창조된 것인지 혹은 영원한지에 대해서는 철학과 종교 그 어디에서도 확실한 답변을 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질문은 논증의 대상이 아닌 논쟁의 대상이며 그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을 시사한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알 가잘리는 자신의 것만을 유일하게 옳은 해석이라고 강요했던 것이며, 그것이 최대의 부조리였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세계 창조론은 꾸란에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해석일 뿐이다. 알라가 순수한 무의 상태에서 혼자 존재하고 있었다라고 명시하는 구절은 꾸란에 없다.[16]』
제 2 논쟁: 철학자들은 알라가 개별적인 사실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특수자들에 대한 신의 인식가능성의 부정)
이 논쟁은 알라의 인식 능력에 관한 의견 대립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제1 논쟁에서 다룬 창조 능력에 관한 논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븐 시나(또는 당대 철학자들)는 순수한 선의 실체로써의 알라가 물질로 구성된 지상 세계와 어떤 식으로도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보았다.[17] 따라서 알라가 세계를 창조하지도 않았으며, 세계를 직접 인식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알라는 개별자를 모르며 단지 보편자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18]
이에 알 가잘리는 이것이 이슬람의 근본을 무너트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꾸란은 전지전능한 알라의 능력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 가잘리는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왜 철학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보는가? 영원자 알라는 중개자를 통해 피조물을 창조한다. 피조물이 창조될 때 영원자는 그 것에 대해 지식을 얻는다.』[19]
『꾸란에는 하늘과 땅에 있는 미립자의 무게조차도 알라의 지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적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븐 시나는 알라가 보편적인 지식으로써만 사물을 인식한다고 말한다.』[20]
이 논쟁에 관련하여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l 이븐 시나와 알 가잘리의 주장 모두 올바른 논증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l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논쟁과 전혀 무관하다.
그는 논리성을 중요시 했던 철학자로써 어떤 의견의 진위를 판단할 때 결론 자체보다 그 결론이 올바른 방식으로 추론 되었느냐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학자였다.[21] 따라서 『부조리의 부조리』에서, 이븐 시나와, 알 가잘리의 의견 모두가 논증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게 된다.
이븐 루시드가 보기에, 이븐 시나와 알 가잘리 모두가 범한 치명적인 방법론적 오류는 인간지식을 예로 들어 알라의 지식에 관해 판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과 알라의 지식은 근원적으로 다른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을 예로 들어 알라의 지식에 관해 논할 수 없다. 즉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 논쟁의 근원은 창조주의 지식을 인간의 지식에 비유하고자 함에 있다. 즉 인간의 지식에 근거하여 알라의 지식에 대해 유추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간과 알라의 인식 능력에 대해 이븐 루시드는 이븐 시나와 알 가잘리의 의견을 반반씩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인간의 지식은 사물의 변화에 따라 결과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밖에 없다.” 라고 이븐 시나의 입장에 찬성하였고, “알라의 지식은 사물의 원인으로써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라고 알 가잘리의 의견에 동의했다.[22]
따라서 알라의 지식은 시간의 제약을 초월하며 영원 속에서 개별자를 인식하게 된다. 본 논쟁은 알라의 인식 능력에 관한 것이기에 이 부분만 국한한다면 그의 답변은 알 가잘리의 것과 동일하게 보이지만 그는 방법론을 더욱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우연한 결과의 일치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그가 알 가잘리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은 것 또한 이 때문이라 시사된다.
이븐 루시드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그는 개별자에 알라의 인식 가능성을 부정한 것은 이븐 시나일 뿐이며, 소요학파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일 가잘 리가 이븐 시나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혼돈하여 양자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 견해로는, 알 가잘리는 소요학파 학자들의 의견을 오해하여, 그들이 알라가 개별자를 전혀 모른다고 전했던 것으로 보인다.』[23]
그에 따르면 소요학파는 진정한 예시(The true vision)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미래에 발생할 개별적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즉 소요학파는 알라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한다고만 언급했을 뿐 개별자에 대한 인식 능력을 결코 부정한 적이 없었다.
정리하자면 이븐 루시드의 주장은 어떤 인식의 상태가 보편적인가 혹은 개별적인가는 인간의 지식에만 해당되는 개념이며, 알라의 지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알라의 지식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고 개념 정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따라서 알 가잘리가 시도했던 불신자 선언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논증적으로 따져 볼 때, 지식은 보편적이니 개별적이니 하고 묘사되어 질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이견이 존재한다고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다, 즉 철학자들에 대해 불신자 선언을 해야 하느냐 혹은 말아야 하느냐는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다.』[24]
제 3 논쟁 : 철학자들은 육체적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후 신체의 부활에 대한 부정)
부활에 관한 논쟁 또한 제1 논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에 관련 이븐 시나는 인간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했으며, 이에 대해 알 가잘리는 육체적 부활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의견 대립은 제1 논쟁에서 나타난 입장 차이를 보면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
이븐 시나는 극심한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초월적 존재인 알라는 육체, 물질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즉, 알라는 물질세계를 창조도, 인식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에 따르면 육체적 부활이 가능하려면 육체가 새롭게 창조되어야한다. 하지만 알라는 육체를 새롭게 창조할 수 없고, 따라서 영혼만이 부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알 가잘리에 의하면 알라의 무한한 능력은 필요할 때 물질을 얼마든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육체적 부활은 하등의 문제점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븐 시나의 주장은 알라의 창조 능력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불신자의 죄를 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알 가잘리는 이븐 시나와 아리스토텔레스학파를 비롯한 모든 철학자들을 상대로 불신자 선언을 했다.
『(중략) 알라는 물질을 재창조 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는 알라의 능력을 부정할 뿐이다.』[25]
이븐 루시드는 『부조리의 부조리』의 문제 19와 20에서 부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앞서 논의한 두 가지 문제점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알 가잘 리가 범한 오류를 2가지 방향에서 지적했다.
1. 이 논쟁의 핵심은 순수한 종교적 주제와 관련된 것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전혀 관련이 없다.
2. 이븐 시나의 주장이 옳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를 불신자라고 몰아붙일만한 근거는 꾸란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븐 루시드가 보기에 알 가잘리는 이븐 시나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구분하지 못했다. 알 가잘리는 이븐 시나의 주장이 무조건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묘사하곤 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계승자이던 그는 이 논쟁의 주제는 고대 예언자들이 다뤄온 순수한 종교적 문제일 뿐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철학자들과 하등의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고대 철학자들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해 거론한 자는 아무도 없다 지난 천년동안 부활의 문제는 각 종교에서만 언급되었을 뿐이다. 물론 일부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최근의 일이다. 육체적 부활에 대해 처음으로 말했던 자들은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이었다. 우리는 시편에서 육체적 부활을 언급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육체적 부활을 확언하고 있다. 또한 예언자 예수도 육체적으로 부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26]
이와 같이 이븐 루시드는 부활의 논쟁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관계가 없으며 알 가잘 리가 이 문제를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불신자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부활은 순수한 종교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이 개입해서는 안 되며 오직 종교적 틀 안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꾸란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 맥락에서 그는 『꾸란이란 종교 텍스트는 무엇이고, 그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며, 그 읽음에 대한 불신자 선언이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꾸란의 담론은 형식적으로 볼 때 비유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며, 그것은 사물 자체가 아닌 그에 상응하는 예와 형상으로써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같이 비유적 형식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계시의 목적성 때문이라고 본다. 즉 꾸란의 계시 목적은 인류의 행동과 윤리를 바로잡기 위함인데, 대중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가능한 상대적으로 쉬운 비유적 형식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꾸란에는 사후세계가 매우 육감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27] 알 가잘리의 경우 이를 근거로 육체적 부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븐 루시드는 이러한 것은 대중의 이해를 돕고 그들로 하여금 선행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관련 이븐 루시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부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부활을 육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영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낫다.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의로운 자들에게 약속된 천국을 비유하사, 그곳에 강물이 있으되 변하지 아니하고. (꾸란 47:15;)”』[28]
알 가잘리는 꾸란이 육체적 부활에 대해 명백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자들에 대한 불신자 선언은 정당하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의 저서 『이슬람과 무신론의 차이』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중요한 교리의 원칙과 관련하여, 확실한 증거 없이 함부로 꾸란의 문자적 표현을 변경하는 자는 마땅히 불신자 판결을 받아야 한다. 육체적인 부활과 저승에서의 처벌 등을 부정하는 자는 정말로 불신자 판결을 받아야 한다. 영혼이 육체로 귀환할 수 없음을 증명할 증거는 결코 없다. 이것은 종교에 해악을 미치며, 따서 이것을 말하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불신자 판결을 받아야 한다.』[29]
이와 같은 알 가잘리의 선언에 이븐 루시드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것은 그가 부활에 대한 꾸란의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알 가잘 리가 인용한 꾸란 구절은 부활의 원리가 아닌 묘사에 관련된 것으로, 그 구절이 해석되어야 하는지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부활에 관한 구절은 해석되어야하는 범주에도, 해석되지 말아야 하는 범주에 속한다고도 단언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구절에 관한 해석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즉, 꾸란은 대중의 계몽을 위해 부활을 육체적으로 묘사할 뿐, 그것이 부활의 원리 자체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 육체적 부활인가 혹은 영적인 부활인가 혹은 그 둘 다인가 등과 같은 것들은 단지 부활의 묘사에 대한 의견차이일 뿐이다. 그중 어느 것도 부활의 원리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부활의 원리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근거로 불신자 선언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븐 루시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문제에 대해 오류를 범하더라도, 그 학자는 용서 받고 보상을 얻는다. 부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이상 그러하다. 즉 어떤 해석을 하든 그 해석은 부활의 묘사에 관한 것이지 부활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 해석이 부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불신자 선언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신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율법(샤리아)의 원칙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30]
그의 견해에 따르면 꾸란이 말하고 있는 부활의 원리는 영혼 불멸이다. 만일 꾸란의 구정 중 부활을 육체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또한 이븐 시나의 경우 육체적 부활을 부정했고 영적 차원에서만의 부활이 가능했다고 했기에, 이븐 루시드가 보기에 이 주장은 비록 육체적 부활의 가능성은 부정했지만, 부활의 원리인 영혼 불멸만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알 가잘리의 불신자 선언은 꾸란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음을 밝힌다.
『이 문제와 관련하며, 학식 있는 모든 자들의 의무는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정직하게 믿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연구한 바가 종교적 원리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미래의 삶이 존재한다는 원리를 부정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원리를 부정한다면 그 자는 바로 불신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경전과 이성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원리 전체는 영혼 불멸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31]
이 논쟁들을 살펴 볼 때에 이븐 루시드가 천착한 최대 관심사는 그리스(헬라) 철학과 이슬람 종교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가에 있었다.
그는 종교와 철학 간의 갈등은 근원적으로 텍스트 해석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알 가잘 리가 제기한 논쟁들을 다루기에 앞서 자신의 독특한 해석학적 원칙을 정립했으며 그것들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종교는 종교의 틀 한에서 그리고 철학은 철학적 틀 안에서 이해한다.
2. 꾸란의 구절 가운데 원리에 해당되는 것은 해석해서는 안 된다.
3. 꾸란을 해석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학문에 정통한 자들에게만 국한된다.
4. 학문에 정통한 자들은 자신들의 해석을 함부로 대중들에게 발성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사실 현대에 와서의 과학과 종교간의 대립과도 비슷하다 여겨진다. 대표적인 한편으로 모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창조 과학회가 이븐 시나에 비유될 수 있겠고, 알 가잘리는 그것을 반대로 비판하는 기독교적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는 창조 과학회가 알 가잘리, 이븐 시나를 도킨슨과 같은 학자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것 또한 전문성과 이해의 결여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에 이 또한 우리의 숙제라 생각된다.)
이러한 해석학적 원칙에서 이븐 루시드는 알 가잘리의 논쟁 속에서 발견된 모순점들을 지적했는데, 그 내용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눠진다.
1. 알 가잘리의 논쟁은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이븐 루시드는 모든 학문에는 고유의 원리가 있다고 주장함으로, 종교와 철학은 반드시 각각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전제로 내세웠다. 신학자의 경우 철학에 대한 정통적 지식 없이 함부로 종교적 잣대를 휘두를 수 없기에 알 가잘리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정통하지 못한 이븐 시나의 철학 텍스트에 의존하는 주장으로써 이븐 시나를 넘어 모든 철학자를 불신자 취급하는 오류를 범했다. 또한 알 가잘 리가 내세우는 이슬람의 원칙 또한 전혀 꾸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2. 알 가잘리는 자신의 개인적 해석을 강요하려는 독단주의에 빠졌다. 이븐 루시드는 논쟁의 주제들이 꾸란에서 명확히 언급되지 않는 이상 그 것들은 언제까지나 해석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꾸란의 해석은 오직 학문에 정통한 자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며, 일반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꾸란이 계시된 목적은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성행을 하도록 계도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이론적 논쟁을 촉발시키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학문적 기반이 없는 대중들이 이에 휘말릴 경우 그들은 꾸란을 불신하게 되어 자칫 불신자가 되기 쉬운 것이다. 또한 이에 따라 이슬람에 치명적 해악을 끼친 자는 바로 이븐 시나가 아닌 알 가잘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원래 논쟁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에 대해 마치 자신의 해석만이 유일하게 옳은 정답인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알 가잘리는 대중들을 향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독단적 행위로써 대중들을 신앙적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논쟁의 평가와 아베로에스의 영향
이 논쟁을 살펴보며 알 수 있는 것은 아베로에스에 의하면 모순되는 두 주장에 대한 입장은 한쪽이 틀릴 수 있으며 진리를 계시하는 방식의 차이로 인한 상호간의 오류 발생이라는 것이다. 또한 알 가잘리는 오늘날의 문자해석주의로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사실 이와 같은 논쟁은 지금도 많은 학회와 대학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과학과 신학의 마찰이 일어나는 일 또한 서로간의 다른 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며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트집 잡아 독선적인 정죄 혹은 주장을 펼침으로써 기인됨을 미루어 볼 때 그는 선구적인 학자였다고 평가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논쟁은 중세 이슬람 지성사의 최대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에도 언급했듯, 서방 세계에 있어서 근대적 사고관을 촉발시킨 촉매가 된다.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보다 서방 세계에서 높게 평가되는데, 12세기 이븐 루시드는 유럽 학자들 사리 가장 인기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학자였고, 그가 사망한지 한 세대가 흐르기 전에 그의 26권의 주석서들은 유대인 추종자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고, 1328년에는 『부조리의 부조리』도 『Destrucyio Destructionis』 란 제명의 라틴어 번역이 등장, 그의 사상의 진면목도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추종자들이 모여들었고 13-14새기의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의 파두아(Padua)는 라틴 아베로에스 추종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13세기 파리대학 인문학부 교수 시제루스(Sigerus, 1235-1282)는 가장 대표적인 그의 추종자로써, “철학을 철학적 틀 안에서 그리고 종교를 종교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아베로에스의 해석학 명제를 받아들여 이중진리설로 발전시켰다. 그의 이견에 따르면 철학, 이성을 따라 진리인 것이 신학, 신앙에 의해 반대의 것 또한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32] 결론적으로 이븐 루시드는 세속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의 근대적 가치관 형성에까지 공헌을 하게 된다.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로는 시제 브라방[33], 보에티우스 다치아[34]가 있으며 이 경우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킴으로 토마스 아퀴나스[35] 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다.
결론적으로 아베로에스이자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의 철학자이지만 기독교의 세계 속에, 저명한 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으며 추종자를 만들었다. 따라서 그는 이슬람철학, 그리고 중세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합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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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박성은, “알 가잘리의 신 개념 – 초월과 내재의 관점에서”, (박사학위논문, 백석대학교대학원, 2008)
l 김정명,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의 철학과 종교간의 갈등 – 이슬람 신플라톤 철학과 전통적 창조관 간의 충돌” 『대동철학』 제61집 (2012년 겨울), 33-62
l 이재경, “아베로에스와 내세의 문제 –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대동철학』 제61집 (2012년 겨울), 63-81
l 김정명, “이븐 루시드의 해석학과 알 가잘리 비판”, 『한국이슬람학회논총』제15-1집 (2005), 107-132
l 김정명, “철학자들에 대한 알 가잘리의 비판과 그 정치적 배경”,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 13-2집(2003), 22-44
l 황병하, “이슬람사상에서 형식주의와 합리주의 연구”, 『韓國中東學會論叢』 제 11-1호(1990), 205-233
[1] 절대적 제 1 원리를 의미하는 신플라톤(neo-Platonic) 철학적 전문적 용어.
플라톤(Platon)은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수(數)의 이론과 자신의 이데아론은 종합하여 일자와 최고의 이데아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를 계승한 신플라톤학파의 플로티노스(Plotinos)는, 일자를 모든 존재계열이 그것에 의존하고 만물이 그로부터 유출되어 다시 그것으로 돌아가는 가장 완전하고 근원적인 실제로 보았다 - 『교육학용어사전』, 1995.6.29, 하우동설
[2] 박성은, “알 가잘리의 신 개념 – 초월과 내재의 관점에서”, (박사학위논문, 백석대학교대학원, 2008), 16
[3] 아비첸나에게서 유래된 논리학의 목표에 대한 설명, Cf. Sham Inati, “Logic”, in History of islamic Philosophy, 2: 802-823
[4] 이재경, “중세 이슬람 철학의 합리주의 흐름”, 『철학논총』 제33집(2003 여름), 295-315
[5] 이재경 “조화에서 분리로 : 13세기 이성과 신앙의 관계” 『철학논총』 제44집 제2권(2006.여름), 316
[6] 김정명, “이븐 루시드의 해석학과 알 가잘리 비판”,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한국이슬람학회논총』제15-1집 (2005), 107-132
[7] 김정명, “철학자들에 대한 알 가잘리의 비판과 그 정치적 배경”,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 13-2집(2003), 22-44
[8] 김정명,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의 철학과 종교간의 갈등 – 이슬람 신플라톤 철학과 전통적 창조관 간의 충돌” 『대동철학』 제61집 (2012년 겨울), 33-62
[9] 논지상 생략한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의 사상을 알고 싶을 경우에 좀더 자세한 내용은 8번 각주의 논문을 참조할 것.
[10] 김정명, “철학자들에 대한 알 가잘리의 비판과 그 정치적 배경”,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 13-2집(2003), 22-44
[11] 알 가잘리의 불신자 선언에는 정치적 배경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과제의 논지에서 벗어나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자세한 것은 김정명, “철학자들에 대한 알 가잘리의 비판과 그 정치적 배경”,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 13-2집(2003), 22-44의 32-42를 보길 바란다.
[12] 아베로에스 또한 내세의 문제에 대한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사항은 논제와 벗어나지 않기 위해 생략하였으며 자세한 사항이 필요할 시 이재경, “아베로에스와 내세의 문제 –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대동철학』 제61집 (2012년 겨울)을 참조하기 바란다.
[13] 이러한 학론 까지 언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이슬람뿐만이 아닌 조로아스터교, 이누마 엘리쉬, 자이나 교 와 같은 고대 종교, 문헌까지도 언급해야 하므로 논제로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이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질문은 신정론에서도 거론되는 질문중 하나이다.
[14] Al Ghazali (a) 1993, 42
[15] Ibn Rushd 1991, 42-43
[16] Ibid
[17] 이는 초대 교회사에서도 비슷한 문제로써 영지주의가 존재했다. 당시 초대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계기로 무로부터의 창조와 같은 논쟁들에 대한 교리확립과 함께 이러한 혼란의 방지를 위하여 현대에 이르러 사도신경, 즉 공식적인 문서로는 니케아 신조로 기록된 신조로 선을 그음으로써 해결했다. 따라서 이것은 철학과 신학사이에서 발생될 수밖에 없던 논쟁으로 추측된다.
[18] 여기서 그가 말하는 개별자란 물질과 결합되어 구체화된 존재를 말한다. 반면에 보편자란 개별자에게서 물질적 속성을 제거하고 남은 관념적 개념에 해당한다. 이는 각주 11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19] Al Ghazali (a) 1993, 149
[20] Al Ghazali (a) 1993, 142
[21] 따라서 그는 어떤 결론이 자신의 것과 다르더라도 올바른 추론에 의해 도달된 것이라면 최소한 그 사고 체계 안에서 만큼은 올바르다고 인정했다. 반대로 어떤 결론이 자신의 것과 우연히 일치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추론에 의거한 것이라면 가차 없이 비판을 가했다.
[22] 알라의 지식은 사물의 원인으로, 사물이 변화하더라도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23] Ibn Rushd, 1991 39
[24] Ibid, 40
[25] AI Ghazali 1993a, 213-214
[26] Ibn Rushd, 1991, 324
[27] 예를 들자면 천국에 들어간 자는 육체적 쾌락을 느끼고 지옥에 던져진 자는 지옥불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언급된다.
[28] Ibid, 326
[29] Al Ghazali (b) 1993: 70
[30] Ibn Rushd, 1991, 48
[31] Ibn Rushd, 1998: 204
[32] 이는 철학과 이성을 기독교회의 권력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시도였으며 그것은 17세기의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과도 비슷하다.
[33] 다른 해석에 따르면 그 또한 이중진리론으로 분류되는 그 자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34] 이 경우 시제 브라방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즉 모순된 진리는 성직자들의 편협한 시각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제경, “시제 브라방과 이중진리론 – 지성적 연혼에 관하여 제7장” 『중세철학』 9권(2003), 221-245 참조
[35] 초대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인해 정통이 생기듯 아퀴나스는 이 논쟁에서 자신의 입장(카톨릭)을 위해 글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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